레즈비언의 장례식은 레즈의 손으로! 가까운 이의 죽음을 예비하여 미리 가상의 장례를 치러보는 다큐멘터리가 이제껏 여럿 나왔다. 개중 말기암 진단 뒤 제 죽음을 준비하는 스나다 마미의 2011년 작 , 온갖 방식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재현한 뒤 가상의 장례식에 이르는 커스틴 존슨의 2020년 작 <...
가까운 이의 죽음을 예비하여 미리 가상의 장례를 치러보는 다큐멘터리가 이제껏 여럿 나왔다. 개중 말기암 진단 뒤 제 죽음을 준비하는 스나다 마미의 2011년 작 , 온갖 방식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재현한 뒤 가상의 장례식에 이르는 커스틴 존슨의 2020년 작 가 정점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신과 가까운 이의 죽음을 다큐라는 형식으로 담아 세계적 화제가 됐으니 이후 등장한 비슷한 작품을 그 자장 아래 놓였다 해도 틀리지는 않을 테다.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을 진실로, 또 가상으로 준비한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과 한 데 묶일 영화다. 그러나 그들과는 다른 삶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저만의 차별점 또한 가진다. 말하자면 주인공인 감독 자신이 저의 내밀한 삶을 얼마나 진솔하고 감각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가에 영화의 가치가 달려 있었다 하겠다. 레즈비언, 그중에서도 정도가 센 축에 든다며 포문을 열어젖힌 영화다. '호모포비아가 준비한 레즈비언의 장례식'에 저를 놓아두고 싶지 않다는 감독은 직접 친구들과 제 장례식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사회는 성소수자와 여성의 불편함을 그저 개인의 일로 소모되고 사라지도록 열심히 포장해왔다'는 감독은 '아무도 소수자를 기억하지 않으려는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를 지워내려는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기록을 남기는 일'이라는 일념 아래 영화를 찍기를 선택한다.이은혜 감독의 첫 연출작 은 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이들이 정작 제 장례식에선 환대받지 못하리란 우려로부터 출발한다. 호모포비아의 예식 가운데 여성, 또 성소수자가 설 자리가 없다는 걸 보여준 뒤 성소수자가 직접 챙기는 장례식의 결행으로까지 이어진다. 성소수자가 놓인 차별이야 한국사회에서 수없이 다뤄져온,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영역이니 그대로 나름의 승부수가 될 수 있겠다. 시작은 역시 사회적 고리다. 한국에서 상주 역할을 할 수 없는 여성, 그중에서도 결혼해 배우자의 법적 지위를 가질 수 없는 레즈비언이 놓인 부조리한 상황을 영화는 인터뷰로써 드러낸다. 상주의 역할도, 상주의 정식 복장도, 또 운구도 거부당하기 일쑤인 이들의 이야기가 실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날 것 그대로의 사실이란 게 아프게 전해진다. 이어 영화는 감독 자신이 직접 제 장례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마치 청첩장을 돌리듯 친구 하나하나에게 장례식 초대장을 전하는 장면, 직접 장례를 준비하며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모습까지가 고스란히 이어붙어 마치 한 편의 장례식 메이킹필름을 보는 듯하다.다만 아쉬운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레즈비언이 놓인 고난은 영화 내내 오로지 인터뷰로써 비친다. 제 장례식을 현실 장례가 치러지는 절차가 아닌 가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부조리가 드러날 여지 또한 상당부분 상실된다. 무엇보다 장례 그 자체를 가까이서 비추지 않는단 건 아까운 대목이다. 편지를 읽는 친구들, 상주를 맡은 이들, 관 안에 누운 주인공 자신의 모습이 비치긴 하지만 거기까지다. 표출되는 감정을 넘어 그 목소리를, 뜻을, 의지를 생생히 전달할 장치를 감독은 얼마 고민하지 않은 듯하다. 여성과 레즈비언이 놓인 부조리함을 선명히 들추거나 전위적 저항에까지 이를 수 있는 순간이 없지 않았을 것이기에 차마 만족한다 평할 수가 없다. 다만 의 가치는 기록할 만하다. 어째서 여성은 상주를 할 수 없는가. 왜 여성과 여성 간 가족관계는 맺어질 수 없는가. 인간이 제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자유를 국가며 낡은 문화가 가로막고 있는 오늘의 상황을 우리는 어찌하여 아직까지 그대로 놓아두고만 있는가. 충분히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 카메라 너머로, 이 영화를 찍고 찍히기로 결정한 이들의 마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건 치이고 다치기만 해온 여린 사람들의 공감대가 분명한 힘을 발하고 있는 덕분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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