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모가 금강을 지키는 세종보 농성장에 나타났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주로 호두, 잣, 도토리를 먹는 청설모가 강변에 모습을 드러낼 일은 거의 없다. 세종보 농성장 인근에는 이런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없고, 대부분이 버드나무뿐이다. 버섯 등 다른 먹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곳 강변에서 청설모를 만나는 것은 매...
청설모가 금강을 지키는 세종보 농성장에 나타났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주로 호두, 잣, 도토리를 먹는 청설모가 강변에 모습을 드러낼 일은 거의 없다. 세종보 농성장 인근에는 이런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없고, 대부분이 버드나무뿐이다. 버섯 등 다른 먹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곳 강변에서 청설모를 만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농성장 강변에서 이리저리 이동하는 청설모는 세종보 농성장에서 처음 만나는 '새로운 손님'이었다.
녀석은 아마 농성장 하류, 세종보 옆 작은 언덕에서 온 것으로 보였다. 그곳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작은 언덕에서 약 600m를 달려 세종보 농성장까지 내달려온 청설모의 깜찍한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설모가 강변에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뒤를 바짝 뒤쫓아 나타난 그림자가 있었으니, 바로 삵이었다. 삵은 약간 마른 듯한 모습이었지만, 몸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은 농성장에 있던 우리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순간, 청설모의 상황이 떠올랐다. 작은 언덕에서 천적을 피해 한껏 내달려온 것이리라. 세종보 농성장에 도착한 청설모는 잠시 숨을 돌린 듯했다. 먹을 것을 찾는지, 아니면 물을 찾는지, 주위를 살피며 작은 여유를 가졌다. 강변에서 뜻밖에 만난 청설모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놀라웠다. 잠시 뒤 청설모는 다시 황조롱이나 매 같은 또 다른 포식자를 피해 숲으로 몸을 감추었다. 그 순간, 늘 바쁘고 여유 없는 우리 삶과는 달리, 자연은 언제나 잠깐의 쉼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 깊이 다가왔다. AD 흰두리대교 아래 작은 녹색 천막, 세종보 농성장의 자연은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수많은 자연의 흔적들이 자갈과 모래, 풀밭에 고스란히 새겨지고 있었다. 계절은 어느덧 가을에 가까워졌고, 청설모는 겨울을 준비할 것이며, 삵은 다시 사냥감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청설모 같은 여유가 없다. 이재명 정부는 여전히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선언하지 않았고, 물관리정책 또한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농성장은 여전히 작디작은 천막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청설모와 삵, 자갈과 모래, 풀과 나무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지난 시절의 내란이 정리되고 사회가 회복되었듯, 환경 내전 역시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확실한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녹조라떼'의 위험을 은폐하고 축소했던 금한승 같은 인물이 차관 자리에 앉아 있는 현실이 그 증거다. 이런 인물이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쥐고 있는 한, 우리가 이 자리를 지켜야 할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삵에게 쫓겨 강변으로 내몰린 청설모와, 윤석열 정부에 쫓겨 현장을 지켜온 활동가들은 어쩌면 다르지 않다. 차이는 있다. 청설모는 결국 숲으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최소한의 확답을 받기 전까지 이 자리를 떠날 생각이 없다. 내란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리듯, 파괴된 물정책을 회복하고 복원하는 과정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반드시 거쳐야 할 인적 청산의 길은 결코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조바심을 내지만, 곧 기대를 접고 다시 싸움을 이어갈 힘을 가다듬는다. 어쩌면 청설모는 이런 우리에게 여유를 보여주기 위해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힘겨운 싸움에도 잠시 숨을 고르며 다시 숲으로 돌아갈 힘을 얻듯이, 우리 역시 잠시의 여유 속에서 다시 버틸 힘을 얻는다. 청설모가 전한 생명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이재명 정부의 물정책 파괴가 끝내 정리되고, 강이 다시 흐르게 될 그날을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