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파병, 60년의 기억]
베트남 꽝응아이성 빈호아사 위령비 입구에 놓인 무덤. 비석엔 ‘남조선 군인’이라 적혀있지만 비석이 낡아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곽진산 기자 “취재가 불허됐다고 합니다.” 출국 전 베트남 꽝응아이성에 취재 요청서를 전달해줬던 한베평화재단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말했다. 베트남에 도착하고 이제 막 취재를 시작할 첫날이었다. 현금인출기에서 취재 비용을 뽑던 차였는데 취재 거부라니. 방금 뽑은 베트남 돈이 추적추적 내린 비에 젖었다. 한겨레 취재진은 꽝응아이성 빈호아사 일대에서 한국군 학살 피해자를 만날 계획이었다. 성이 취재를 불허하니 빈호아 공안도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들 앞에서 주민들과 대화는 금지됐다. “차라리 지금 돌아가시는 게 어때요?” 통역사가 말했다. 이렇게 된 일, 그냥 항공권 비용만 날리는 게 낫지 않느냐는 게 그의 조언이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잔류하자니 앞으로의 일주일이 막막했다. 일단 위령비를 찾았다. 노란 국화를 꽂았다.
가해자 국가의 만행을 취재하고자 이곳에 온 가해자 나라의 기자라, 이 묘한 감정은 공동 무덤 앞에서 처음 느꼈다. 그 뒤로 항공권은 바꾸지 않았다. 모든 계획을 뒤엎고 대신 새로운 마을을 찾기로 했다. ‘빈타인 학살’을 그렇게 발굴할 수 있었다. 빈타인 한 생존자는 학살 이후 한국 사람을 처음 만났다고 했다. 60년이 걸렸고, 공교롭게 그 한국인은 베트남에 생전 처음 온 기자였다. 우리는 10초간 서로를 멀뚱히 쳐다봤다. 그는 덤덤히 말했고, 우리는 상세히 적었다. 그들의 60년 세월은 고작 몇 문장으로 요약됐다. 그들의 기억에서 사라졌거나, 아니면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생략한 사연들이 많았다. 하지만 애초에 잊힐 필요도, 생략할 이유도 없었던 것은 한국을 향한 원망이었다. 취재가 끝나면 베트남 사람들은 시종일관 웃으며 우리를 대해줬고, 불편한 질문에도 적대시하는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학살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것이 그들이 우리에게 증언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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