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정ㅣ논설위원 여당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화두는 민생과 소통으로 수렴된다. 윤 대통령은 지...
여당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화두는 민생과 소통으로 수렴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민 소통과 현장 소통, 당정 소통을 더 강화하라”고 주문한 이후, 연일 “민생 현장으로 더 들어가 챙겨야 한다” “비서실장부터 수석, 비서관, 행정관까지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 살아 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21일 순방 출국길에도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내각은 제대로 된 현장 민심 청취에 힘써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한때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은 이념”이라 외치고 국무위원에게는 전투력을 요구하더니, 이제는 몸을 낮추고 메시지 관리에 신경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연일 대통령실 참모와 국무위원, 여당을 향한 주문과 지시가 이어진다. 빠진 것은 윤 대통령의 직접적인 책임 인정과 실질적 변화 의지다.
윤 대통령에게 강서구청장 선거는 정치 참여 이후 첫번째 패배를 안겨준 ‘사변적 사건’이었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경선 승리→대통령 당선→지방선거 승리→‘친윤’ 당대표 선출까지 한 차례도 승기를 놓친 적이 없었다. 이번 선거가 쉽지 않은 것은 알았지만, 17%포인트 차이까지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윤 대통령은 주변 인사들에게 총선 과반도 아닌 ‘200석 확보’를 목표치로 언급했다고 한다. 그간 주문처럼 외웠던 ‘총선 200석’이 망상에 가깝다는 것을 이번에 절감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까지는 깨달은 것 같다. 다만 현재로선 그 ‘무언가’의 상당 부분을 국정 기조라는 본질이 아닌, 소통 문제에서 찾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를 용산어린이정원에서 개최한 데 이어, 앞으로 국민과 직접 만나는 타운홀 미팅 형식의 민생 관련 회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공개 정책 당정회의를 늘리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국정 운영 방향보다는 윤 대통령의 밀어붙이는 듯한 ‘태도’에서 원인을 찾은 것 같다. 소통 강화책이 정책 홍보성 행사로 비치는 이유다. ‘짜고 치는’ 타운홀 미팅이 민심을 대변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 관계자 또는 여당 인사들 앞에서만 이루어진다. 국민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과 만나는 대신 참모 뒤에 숨어 한마디씩 선택적으로 흘려보내고, ‘진의’는 남들이 해석해주는 식이다. 국무회의 생중계로 일방적 훈시를 쏟아내던 예전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대통령의 ‘반성’을 체감할 수 있는 후속 조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수직적 당정 관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윤 대통령이 “차분하고 지혜로운 변화”를 주문하면서, 여당 대표는 자리를 보전하고 공천 실무를 관장하는 사무총장·부총장은 또다시 친윤계로 채워졌다. 당에서 손을 떼기는커녕 총선 공천은 ‘용산’이 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대통령 대신 정무적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실은 쇄신 무풍지대다. 이념 발언은 자제하는 듯 보이지만, 지금도 육군사관학교에선 홍범도·김좌진 장군 등을 기린 ‘독립전쟁 영웅실’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민생 정책을 입안해도 국회 협조 없이는 실현되기 어려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는 만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국정 운영의 풍향계인 인사 기조 역시 변하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공영방송 사장 후보자에 검찰총장 시절부터 친분 있던 인사를,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엔 대학 친구를 지명했다.
하지만 지지층마저 등 돌리게 한 국정 운영에 대한 자성 없이 “국민이 옳다”는 모호한 발언 정도로 ‘참패 국면’이 수습되지는 않을 것이다.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는 지금껏 반성한 적도, 책임진 적도 없는 정부에 대한 종합평가이자 전면적인 국정 쇄신 요구다. 윤 대통령은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참패 시나리오가 눈앞에 닥치니 각종 지시를 쏟아내고 있지만, 막상 자신은 반성도 ‘남의 입’을 빌려서 할 뿐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바꿀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의 성찰과 변화가 담보되지 않으면, 그토록 강조하는 ‘민생’과 ‘소통’은 정치적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라도 국민에게 국정 기조 전환을 약속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그야말로 ‘국민의 힘’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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