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트리거 60' ㊻ KIST 설립과 과학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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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트리거 60' ㊻ KIST 설립과 과학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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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60주년을 맞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학기술 진흥 정책과 KIST 설립 과정, 그리고 연구개발 강국으로 도약하기까지의 역사를 조명한다.

대한민국 '트리거 60' ㊻ KIST 설립과 과학 입국 1966년 한국 과학기술 연구원이 문을 열고 약 60년. 한국은 연구개발 강국으로 떠올랐다. 미래 청정에너지인 핵융합 분야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핵융합연구로인 KSTAR 외부. 1962년 1월, 경제기획원이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보고했다. 박정희 는 예상치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현재 우리 기술 수준과 기술자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나.” 당시 한국은 연구개발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59년 설립한 원자력연구소가 있었으나 특수 분야 연구에 한정됐다. 나머지 연구소는 정부 스스로도 ‘대부분 생산품 시험에 그칠 뿐, 연구실험 분야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자평할 정도였다.박정희는 62년 11월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도 돌발 발언을 했다. “경제와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제과학심의회의를 설치하자.” 과학기술 관련 정부부처를 만들고, 종합연구소를 세워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 게 바로 이 경제과학심의회의를 통해서였다. 박정희는 과학기술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과학 입국, 기술 자립’은 그의 신조 중 하나였다. 73년 연두 기자회견에서는 ‘전 국민의 과학화’를 내세웠다. 박정희가 어떤 연유로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일본을 보며, 또 전쟁을 겪으며 일찌감치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가슴에 새겼다는 추측이 나올 뿐이다. 절대권력을 쥔 국가 지도자의 관심에 힘입어 국내 연구개발의 토대가 하나둘 마련됐다. 경제개발 계획을 보고받고 기술력과 기술자에 대한 걱정을 표한 직후 경제기획원은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세웠다. 기술자 확보와 외국기술 도입 촉진 방안 등을 담았다.박정희는 수시로 과학기술자들을 만나 귀를 기울였다. 초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과 2대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최형섭 박사의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64년 말, 청와대 한준석 경제담당비서관이 찾아왔다. 대통령에게 과학기술에 관해 설명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함께 기업이 필요한 기술을 선정해 도입하고 소화해 적용하도록 해주는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최 박사뿐 아니라 여러 과학자가 산업기술 종합연구소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자금을 대거 투입해야 하는 연구소 설립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왔다. 베트남 파병에 대한 보답 등을 논의하기 위해 65년 5월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박정희를 국빈 초청했다. 박정희는 공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종합연구기관의 설립을 지원해 달라고 했다. 이듬해 2월 한국과 미국이 1000만 달러씩을 투자해 KIST가 문을 열었다. 설립 자금 2000만 달러는 현재 가치로 약 3000억원에 달한다.설립 자금으로 연구 장비는 살 수 있었지만 우수 연구원을 확보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당시는 두뇌유출이 심각했다. 인재는 좋은 연구 환경과 처우를 찾아 선진국, 특히 미국으로 갔다. 최 원장은 재외 한국인 과학기술자들을 만나 설득했다. “노벨상을 타고 싶으면 남아 있으시오. 그러나 조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면 귀국해 주십시오.” KIST 설립 초기에 재외 과학자 18명이 한국을 택했다. 소식을 들은 휴버트 험프리 미국 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 최초의 역 두뇌유출이다.” 귀국한 이들에겐 파격 대우를 했다. 연봉은 국립대 교수의 3배였고, 당시에 없던 의료보험을 미국과 계약해 맺어줬다. 박정희가 과학자들의 봉급표를 보고 “나보다 봉급 많은 사람이 수두룩하군”이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KIST는 컬러TV 수상기, 국내 최초 미니컴퓨터인 ‘세종 1호’, 폐렴 백신, 광섬유 기술, 인공신장 등을 개발하며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됐다. 60년대 말~70년대 초반에 나온 전자·기계·자동차 공업 육성 방안 또한 KIST의 작품이다. 103만t 철강 생산설비와 공장 배치, 원료 수급 대책 등 포항종합제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낸 것 역시 KIST였다.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KIST 산하 도핑컨트롤센터가 남자 100m 육상 캐나다 대표 벤 존슨의 약물 복용을 밝혀냈다.시간이 흐르며 규모가 커진 KIST의 전문 연구부문들이 독립해 나갔다. 지금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학기술정보연구원·생명공학연구원 등이 그렇게 생겼다. KIST가 정부 출연 연구소의 모태인 것이다. 잇따라 연구소가 생기면서 여러 연구기관을 한곳에 모아 협동체를 만들자는 구상이 시작됐다. 연구장비와 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연구원들 간 교류도 촉진해 시너지를 내자는 취지였다. 그렇게 73년 ‘제2 연구단지 건설 기본계획’이 확정됐다. 장소는 충남 대덕군이었다. 78년 표준과학연구소를 시작으로 정부출연연구소와 민간연구소들이 모여 현재의 대덕연구개발특구가 형성됐다. 애초 KIST는 산업기술 개발이 목표였다. 기업에 필요한 과제를 수주받아 연구하는 계약 연구기관이었다. 이후 설립된 정부 출연 연구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장 산업 발전이 시급했던 당시로선 기초과학 연구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최형섭 박사의 회고록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이휘소 박사한테서 자신도 연구소에서 일해 보겠다는 편지를 받은 일이 있다. 그에 대해 나는 KIST는 아직 기초연구를 할 단계가 아니며, 노벨물리학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박사는 좀 더 거기서 머물며 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회신했다.’ 대기업들이 자체 연구개발 능력을 갖추고 나라가 선진국 문턱을 밟을 무렵이 되자 국가적인 기초과학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그렇게 해서 2011년 기초과학연구원이 생겼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협회나 일본 이화학연구소같이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하는 연구기관을 벤치마킹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설립 목표였다. 3년에 불과하던 다른 연구원과 달리 IBS 원장의 임기는 5년에 연임을 보장했다. 파격적인 연구자금도 줬다.이런 과정을 거치며 한국은 연구개발 강국으로 떠올랐다. 세계 최고 과학전문지인 네이처가 논문의 질 등을 종합 평가한 ‘네이처 인덱스’에서 한국은 올해 세계 7위를 차지했다. 연구개발 투자는 절대액 기준 세계 5위, 국내총생산 대비 비중으로는 이스라엘에 이어 2위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 36개국을 비교한 ‘국가 과학기술 혁신역량 평가’ 결과는 미국·스위스·네덜란드에 이어 4위였다. 하지만 국민 모두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다. 해마다 10월이면 ‘노벨상 앓이’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은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27명인 반면, 우리는 아직 없다. 물론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원보다 거의 100년 앞서 이화학연구소를 세운 일본과 비교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 일본은 특히 경제가 호황이었던 70~80년대 기초과학에 대거 투자해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00년대에 잇따라 노벨 과학상을 받았다. 또 한국은 아직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초과학 연구에 투자하기보다 단기 성과를 요구하는 풍토가 남아있기도 하다. 응용기술 분야 또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 언제부턴가 ‘투자한 만큼 경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의 ‘연구개발 패러독스’란 말이 나왔다. ‘피크 코리아’라는 단어까지 들린다. 과학기술인에 대한 존중과 대우도 예전보다 크게 떨어졌다. 오죽하면 인재들이 너도나도 의대만 찾는 실정 아닌가. 중국의 과학기술력이 미국과 경쟁할 정도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현실 역시 대한민국 경제에는 위협 요소다. 『과학기술 50년사』를 총괄 편찬한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소가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고, 기업 연구소가 이를 받아 상용화할 수 있도록 국가 혁신체계의 체질 개선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다음은 ‘국민연금 도입’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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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박정희 과학기술 연구개발 두뇌 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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