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에서 120여년 전 참수 당한 동학 지도자 응문 김창구(1849∼1894, 김응문)의 머리 유골이 최근 확인됐다. 국내에서 동학군 유골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동학혁명 때 가산 털어 무안 농민군 조직·지원 5일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차뫼마을 입구에 세워진 동학농민혁명지도자 김응문 일가의 현창비를 후손이 살펴보고 있다.김용희 기자 [email protected] 전남 무안에서 120여년 전 참수 당한 동학 지도자 응문 김창구의 머리 유골이 최근 확인됐다. 국내에서 동학군 유골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후손들은 공식 위령제를 열어 선조의 한을 풀었다. 5일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차뫼마을에서 만난 후손 김성황 전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은 “1990년대 이전까지는 역적 집안으로 몰릴 수 있어 증조할아버지의 동학 참여를 숨기는 분위기였다. 이제서야 선조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이 가리킨 곳에는 ‘동학농민혁명지도자 김응문 김효문 김자문 김여정 현창비’라고 쓰인 기념석이 놓여 있었다.
드러내놓고 슬퍼할 수 없었던 유족들을 김응문과 자문의 머리 유골만 수습해 무안읍의 월구정이라는 산에 아기 묘를 몰래 만들어 안장했다. 또 효문은 무안 몽탄면 사천리, 여정은 무안읍에 묘를 만들었다. 후손들은 1996년 김응문과 부인 노씨를 합장하려 월구정 아기 묘를 파묘했다. 이 과정에서 옹기 항아리 안에 든 머리 유골을 발견했으나 다시 매장했다. 당시 매장문화재법은 유골이나 미라 등을 문화재에 포함하지 않은 터라, 발견된 육골도 연구는커녕 화장이나 매장을 해야 했다. 후손들은 2019년 동학혁명 국가기념일이 제정되자 김응문의 추모사업을 추진했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김응문 일가의 합동묘역 조성을 위해 올해 4월28일 개장하는 과정에서 김응문 유골의 존재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다. 개장에 참여했던 박석면 무안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응문, 효정, 여정 등 세분의 묘를 먼저 개장했는데 모두 머리 유골만 확인됐다. 참수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