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이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의 과거 해외 출장을 문제 삼으며 '중대한 의혹'을 제기했지만, 팩트 확인 미흡과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의혹 제기의 적절성, 유권자가 알아야 할 공익, 그리고 네거티브의 위험성에 대해 짚어봅니다.
은 상근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지난 3월 31일 오전,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이 갑작스런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밝힐 내용은 서울시장 후보 관련 '중대한 의혹'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엇이 '중대한' 의혹인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오늘 정원오 후보의 중대한 의혹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정 후보는 구청장 재임 중 한 여성 직원과 해외 공무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문제는 그 공무 출장 서류에 그 여직원이 '남성'으로 둔갑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해당 자료를 요청하자 성동구청은 그 여성의 성별을 가려서 제출하였습니다. (...) 정 후보에게 묻겠습니다.
한 여직원을 콕 집어 대표적인 휴양지에 동행시킨 이유가 무엇이며, 서류상에서 그 여성이 남성으로 바뀐 경위가 무엇입니까?' 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정 후보가 2023년 3월에 다녀온 공식 출장을 문제 삼으며 '둔갑', '조작' 등의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정 후보가 ▲'여직원과 휴양지 칸쿤에 동행했다' ▲'성별이 조작되었다' ▲'함께 다녀온 여성 직원이 이후 파격적으로 재채용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같은 날 오후 TV조선 유튜브에 출연해서도 '(칸쿤) 2박 3일 동안 행적이 묘연하다', '둘이 비행기 타고 갔다는 건 이상한 것'이라며 '정 후보가 왜 그 분을 픽(pick)해서 갔는지 (의아하다)'라며 비슷한 주장을 되풀이했습니다. 이날 성동구청이 낸 보도자료와 정 후보 대변인, 당시 출장에 동행했던 이들(김두관 전 민주당 국회의원, 이정옥 전 여가부 장관, 이동학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증언으로 김 의원 주장은 대부분 기각되었습니다. ▲성별을 잘못 쓴 것은 구청 직원의 명백한 실수이고 ▲칸쿤은 출장지가 아니라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기 위해 들른 경유지였으며 ▲당시 출장에는 11명이 동행했고 ▲해당 직원 채용은 출장 2년 6개월 뒤 이루어졌으며, 정식 채용과 심사를 거쳤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김 의원은 1일 다시 새로운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에 '구차한 변명'이라며 '여자가 남자로 바뀐 게 단순한 실수라고? 그러면 심사위원 서명이 추가된 것도 실수인가?'라며 의혹을 추가로 제기했습니다. 2023년 말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서류에는 서명이 없었다가 이후 생겨났다는 것인데, 성동구청은 이에 '개인정보 보호로 지운 것'이라 반박했습니다. 그럼에도 김 의원은 2일 재차 '(정 후보는) 국민 세금으로 달달하게 칸쿤 다녀온 '미스터 칸쿤''이라고 썼습니다. '의혹 검증'이라는데... 여기서 유권자들이 알아야 할 공익은 무엇일까요? 김 의원의 주장과 이후 해명-재주장 등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김 의원은 '의혹'이고 '검증'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인신공격성 네거티브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공론장을 어지럽힐 뿐 아니라, 비생산적인 소모전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정당한 의혹 검증과 소모적인 네거티브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앞서 민주당 후보들 사이에서도 검증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정 후보를 향한 박주민 후보의 도이치모터스 의혹 제기, 전 후보의 '성공버스 교통약자 배제' 의혹 등을 두고 이들은 '법에 근거한 정당한 질문'이라고 했으나, 정 후보 측은 '네거티브'라고 맞섰습니다. 민주당 출입기자로서 공방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은 '상대가 숨기고 싶어하는, 그러나 유권자는 알아야 할 팩트(fact)가 있느냐'에 따라 정당한 검증이냐 아니냐가 갈린다는 것입니다. 김 의원 말대로 '서울시장 후보는 엄정하고 철저하게 검증'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기본 전제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검증 내용이 유권자가 마땅히 알아야 할 만한 내용이어야 하고 ▲실제로 밝혀야 하는데 상대가 의도적으로 숨긴 정황이 있어야 하며 ▲이 사실을 밝히는 것이 모두를 위한 공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 의원이 제기한 의혹은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칸쿤은 출장지가 아닌 경유지이며, 인원이 2명이 아닌 11명이라는 기본 사실관계부터 잘못 알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래서 김 의원이 제기하는 '정 후보의 중대한 의혹'은 무엇일까요? 성별 표기를 틀린 것? 출장에 여성 직원을 데리고 간 것? 칸쿤에 들른 것? 회견 직후 보수 언론들은 '정원오 '여직원과 칸쿤' 의혹', '여직원과 칸쿤 출장 의혹'이라는 식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각종 유튜브에는 '정원오, 여직원과 '단 둘이 해외'? 해당 직원, 복귀 후 '초고속 승진''이라는 썸네일이 달린 영상들로 가득 찼습니다. '단 둘'도 아니었고 '초고속 승진'도 사실이 아니었지만, 이미 독자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어쩌면 김 의원이 겨냥한 것은 이것이었을까요? 정 후보의 도덕성을 문제 삼고 싶었던 거라면 김 의원의 회견은 더 정교했어야 했습니다. 이번에 김 의원 측이 당사자로 거론한 여성 공무원은, 이미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윤어게인 단톡방 등에서 상반신 사진이 박제되어 돌아다니며 '얼평' '몸평'을 당하는 조롱거리로 전락했습니다. 그 자신도 두 딸이 있다는, 1987년생 '젊은' 정치인 김 의원이 처음부터 이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김 의원은 6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롤모델 정치인으로 영국의 마가렛 대처 총리를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뚜렷한 주관과 철학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정치인', '듣기 싫은 바른말을 하는 보수 정치인, 좋아하기는 어려워도 존경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유력 후보를 상대로 한 검증은 언제든 시도할 수 있고 시도되어야 합니다. 정 후보처럼 과거 언론의 검증을 받지 않았던 후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엄격한 사실 관계와 확인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그저 언론의 '제목 장사'를 위한 저급한 네거티브가 되어 이번과 같이 애꿎은 피해자를 만들어낼 뿐입니다. 진영을 떠나 그런 정치인을 존경하기란 어렵지 않을까요. 비슷한 또래인, 더구나 계엄에 반대했던 소신파 김 의원에게 '정치를 좀 더 크게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은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