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도쿄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
김대중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이 도쿄 신주쿠에서 열렸다. 참가자는 100명을 조금 넘었다. 같이 갔던 중2 아들은 3개월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과 비교해 그 때보다 사람이 더 훨씬 더 많다며 놀라워 했다. 이번엔 둘째 딸이 누군가를 가리키며 말한다.그가 가리킨 '아줌마'는 후쿠시마 미즈호 일본사회민주당 당수였다. 후쿠시마 당수는 2년전 줌 미팅으로 개최됐던 온라인 추도식에서 특별강연을 했고, 딸아이가 말한 것처럼 2019년 도쿄 YMCA 회관에서 열린 추도식에선 추도사를 낭독했었다. 둘째 딸 유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기억을 용케 떠올려 낸 것이다.추도식이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당연하다는 듯 제일 앞자리를 차지한 두 아이를 바라보며 왠지 흐뭇해진다.8월 18일. 매년 이 날엔 김대중 대통령 추도식을 연다. 처음엔 우에노의 조그마한 식당에서 열서너명이 모여 조촐하게 고인을 기렸던 행사가, 해가 지나면서 상당한 규모로 발전했다.
임철 쓰다주쿠 명예교수 역시"제 인생을 되돌아보면 김대중 선생님만큼 저를 포함해 우리 재일동포들의 사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 분은 없었던 것 같다"면서"김대중 구출운동은 물론 한국 민주화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신 분"이라 말했다. 임 교수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와다 교수는 납치사건 발생 이후, 곧장 지식인 연대를 꾸려 성명을 발표하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발생한 한국 현대사의 고비고비마다 김대중 선생을 지지하고 또 연대하는 활동을 해 왔다고 말했다. 김대중 내란 음모 누명으로 그가 사형선고를 받았을 땐 사회당과 연대해 '김대중을 죽이지 마!'라는 국제적 구명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결국 전두환 신군부는 국내외적 압력에 굴복해 김대중을 석방시키는 대신 해외에 머물도록 했다. 그리고 십여년의 세월이 흐른 1983년 와다 교수는 미국 워싱턴에서 김대중을 처음으로 만났다며 그 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