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이태원의 SOS는 왜 외면 받았나 그것이알고싶다 힐스보로참사 이태원참사 이준목 기자
10월 29일, 핼러윈 축제를 즐기던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했다. 누군가에겐 설레고 기대되었을 그날은, 한순간에 악몽같은 기억으로 돌변했다. 젊음과 활기가 넘치는 이태원 골목은 사고 이후 출입이 통제되어 국민들은 슬픔과 충격에 휩싸였다.하룻밤 사이에서 너무도 달라져버린 세상, 돌이킬 수 없는 156명의 생명은 왜 사고를 막지 못하고 희생되어야 했을까. 과연 이 비극의 원인과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5일 방송된 SBS 에서는 '핼러윈의 비극 외면당한 SOS' 편을 통하여 이태원 압사 참사를 조명했다.이태원 참사 유가족인 정해문씨는 이번 사고로 딸을 잃었다. 그날 오후에 이태원에 약속이 있어서 나간다는 통화가 딸과의 마지막 대화가 됐다. 정해문씨 부부는 이태원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뉴스로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으나 딸과 연락이 되지 않았고, 결국 오후 한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주검으로 돌아온 딸을 마주하고 충격에 빠졌다.
현장 구조에 참여했던 김진혁씨는 구조대원들을 도와 희생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진혁씨는 이미 숨이 멎어버린 희생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굉장히 차가웠다.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틀동안 잠을 못 잤다. 꿈에서 제가 목격했던 희생자들이 나타나 살려달라고 호소했다"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음을 고백했다.사고 이후 많이 시민들이 분향소와 현장을 찾아 그날의 참사로 희생된 피해자들을 추모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우리의 이웃이었던 사람들, 어쩌면 나나 우리 가족이 겪을 수도 있었던 일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다.이태원 참사는 왜 막지 못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 이미 예상된 핼러윈 축제에서 관계 당국의 현장 통제와 안전 관리가 전혀 이루지지 않은 데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경찰은 초기에 국과수 합동감식과 CCTV 조사를 통하여 이른바 '토끼머리띠 남성'의 존재를 사고의 원인으로 주목했다. 행안부는 이번 참사의 명칭을 '이태원 사고'로, 피해자들을 '희생자' 대신 '사고 사망자'라는 객관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통일하라는 공문을 참사 다음날 각 지자체에게 내려보낸 사실이 확인됐다.또한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고의 원인과 책임규명을 둘러싸고 정치적 공방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심지어 온라인에서는 오히려 축제에 참여했던 희생자들의 책임을 탓하여 비난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슬픔과 애도만으로도 부족할 시간에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유족과 국민들이 정말로 알고싶은 것은, 정치싸움도 형식적인 사과나 남탓도 아니다. 그저 왜 그날의 사고를 막을 수 없었는지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일 것이다.
제작진은 사고당일 CCTV와 제보 영상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누군가 고의적으로 앞사람을 미는 듯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물리학자인 원병묵 성균관대 교수는"'크라우드 덴시티에 따라 그 움직임의 상태가 결정된다"는 이론을 설명하며"1제곱미터당 9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리게 되면 군중 자체가 개인이 아니 한 덩이가 된다. 액체가 고체같은 상태가 되어 파도에 떠밀리듯 휘청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군중들이 불안정한 패닉 상태에 빠지며 발버둥치면서 누군가가 미는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영상 분석 결과 사고 당시 이태원에는 1제곱미터에 무려 16명의 사람들이 몰려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태원 참사 당시 사람들이 느낀 압력은 누군가가 밀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운집하면서 생긴 '군중압력' 그 자체였다. 여기서 한 영역에 압력이 집중되는 지점에서 압사사고가 발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