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고민 없이 인력 수급만…아이들에게 학교 수업은 ‘고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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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변하고 있다. 전체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이주민 유입이 늘어나면서 이주배경 학생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2025년 교육 기본통계’를 보면, 올해 전국 초·중·고등학교 재학 이주배경 학생은 처음 20만명을 넘어섰다. 10년 전과 비교해 2.5배 늘어났다. 전체 학

학교가 변하고 있다. 전체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이주민 유입이 늘어나면서 이주배경 학생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2025년 교육 기본통계’를 보면, 올해 전국 초·중·고등학교 재학 이주배경 학생은 처음 20만명을 넘어섰다. 10년 전과 비교해 2.5배 늘어났다. 전체 학생 중 이주배경 학생 비율은 4.3%에 이른다. 특히 이주배경 학생 중 다수를 차지했던 국내출생 학생은 줄어들고 한국어를 모르는 채 입국한 외국인 가정 학생과 중도입국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다.

양과 질에서 학생 구성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교육은 제자리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어가 서툰 이주배경 학생이 공단 지역 중심으로 늘어나면서 학생 90% 이상이 이주배경을 가진 학교도 등장했다. 정부는 이주배경 학생에 대한 한국어 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좀 더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주배경 학생과 한국 사회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한겨레는 학교 안팎을 오가며 현장을 두루 살폈다. 경기 안성시 비룡중학교는 전교생이 644명이다. 9월1일 기준 이 중 132명이 이주배경 학생이다. 20.5%. 다섯 중 하나는 이주배경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제대로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학교 수업을 듣는다. 학교 현장은 이처럼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교육 정책은 이를 뒤따라가기 바쁘다. 한겨레는 이런 현실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달 25일 비룡중에서 하루를 보냈다. 비룡중은 최근 몇년 사이 급격히 이주배경 학생이 늘어났다. 국적별로는 한국을 포함해 모두 12개국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다.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러시아어권 학생이 많다. 학교에서 서쪽으로 1.5㎞ 거리에 안성 최대 산업단지인 안성공단이 있고, 남쪽으로 주거비가 싼 원도심이 있어 이주노동자 가정 자녀가 이곳에 모여들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한국어 방송 뒤에 러시아어 방송이 잇달아 나오는 이유다. 이 방송을 녹음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폴리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왔다. 학급에서 부반장을 맡을 정도로 아이들과 잘 지내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폴리나는 지역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이 학교에 폴리나와 같은 꿈을 꾸는 이주배경 학생은 몇 되지 않는다. 황규덕 비룡중 국제이해부장은 “아이들에겐 수업이 고문이나 다름없다”고 했다.실제 한겨레가 만난 이주배경 학생들은 대부분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수업을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은 교실에서 45분 수업시간 동안 잠을 자거나 멍을 때리기 일쑤였다. 다문화특별학급에서 열리는 한국어 수업 풍경도 비슷했다. 그렇게 침묵하던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복도로 쏟아져 나와 말이 통하는 친구끼리 모여 답답함을 토해냈다. 수업시간엔 한국어만 들리던 학교는 쉬는 시간이면 러시아어로 가득 찼다. 모둠 활동 등 다른 아이들과 협력이 필요한 시간에 이주배경 학생들은 더욱 주눅 들었다. 이런 문제는 이주배경 학생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무리 모국에서 공부를 잘하고 활발한 학생이었다고 해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한국에서는 언어 소통 문제로 참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쌓인 좌절은 아이들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학교에 다니면서 ‘절망’을 학습하게 되는 셈이다.학교 현장에선 아이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언어가 통하지 않다 보니 수업은 물론 생활지도에서도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주배경 학생 관련 정책도 한국어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주배경 학생 교육 경험이 많은 교사들 사이에서는 좀 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어 학습 중요성을 부정할 순 없지만,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정서적 지원 없이는 학습에 필요한 기초 토대조차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비룡중 교사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는 인력은 한국어 교원이 아닌 러시아어와 한국어가 둘 다 가능한 원어민 보조교사 쿠츠모바 율리아다. 율리아는 직접 수업은 하지 않지만 학교에서 전일제로 일하며 아이들과 소통한다. 덕분에 비룡중은 이날 이주배경 학부모 20여명이 참여한 진학 설명회도 진행했다. 이날 학교는 한국에서 교육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을 약 2시간 동안 학부모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소통이 간절했던 교사와 학부모는 이날 밤 10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현장 교사들은 “지금 학교에는 아이들이 의지할 어른이 없다”고 했다. 담임교사가 이 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다 보니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말이 통하는 자기 문화권 친구들과 어울린다. 자연스럽게 한국어 성장도 더뎌진다. 비룡중 국제이해부 임민지 교사는 “단순한 의사소통 지원을 넘어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과 학습, 그리고 문화 이해를 위해 율리아 선생님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문제는 정책 차원에서 공백이 있다는 점이다. 비룡중은 올해 학기가 이미 시작한 5월에서야 뒤늦게 경기도교육청에서 인건비 4천만원을 지원받아 원어민 보조교사를 채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년에는 해당 예산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 예산은 한국어 교육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룡중은 교장·교감까지 나서 안성시의회와 안성시청 등을 다니며 관련 예산 편성을 호소하고 있다. 원어민 보조교사 없이는 아이들을 키워낼 수 없다는 절박함이다. 김태호 비룡중 교장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원어민 보조교사가 절실하다”고 했다. 비룡중을 포함해 학교들은 언어가 부족한 학생을 따로 모아 다문화특별학급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주배경 학생을 따로 분리해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니 교과 학습에 공백이 생기는 문제도 있다.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울 동안 교실에서 학생들은 다른 과목 수업을 받는데, 현재로선 사실상 이 간극을 메워줄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한국어 학습 기간이 비교적 긴 고학년·상급학교로 갈수록 오히려 교육에서 이탈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현상이 벌어진다. 학습에는 언어 능력 외에도 시기에 맞는 교과 학습이 중요한데,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한국어 실력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니 아이들이 ‘부진아’ 취급을 받으며 학습에 대한 자신감을 잃기도 한다. 자신감 하락은 자연스럽게 한국어 공부 동기도 떨어뜨린다. 윤현희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이주배경 학생들은 한국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교육 활동 운영이 어렵고, 이 때문에 한국어 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다. 하지만 교육 정책이 한국어 교육에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학교에선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사회가 외국인 인력 충원 등에만 목을 매며 학교 현장에 아이들을 떠맡겼다는 비판이다. 황규덕 국제이해부장은 “지금 한국 사회는 가족들이 평온하게 티브이를 보기 위해 우는 아이를 다른 방에 분리하듯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할 문제를 학교라는 특정 공간에 숨기고 있는 셈”이라며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 사회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다인종·다민족 사회’에 접어든 만큼 이주배경 아동 교육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영순 인천대 객원교수는 “한국 학교와 사회는 이주민이 들어오면 무조건 동화하는 방향으로만 바라본다”며 “이주민들이 가진 정체성과 모국어를 고려하며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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