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특례시가 북한산성 행궁의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숙종 때 건립된 행궁의 역사적 배경, 건축적 특징,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보존 방안 등을 논의하며, 시민들의 세계유산 등재 염원을 확인했다.
고양특례시는 지난 3월 5일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 북한산성 행궁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한양의 수도성곽'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정식 제출한 뒤 열리는 첫 번째 학술행사다. 전문가들은 조선 숙종 대인 1712년에 건립된 왕의 별궁이자 비상시 피란처인 행궁의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향후 보존과 활용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기조강연에 나선 송인호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북한산성을 '한양의 수도성곽'이라는 단일 유산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북한산성이 한양도성, 탕춘대성과 연결되어 도시의 구조 및 경관과 분리할 수 없는 도시유산의 성격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14세기에 만들어진 한양도성과 18세기에 축조된 산성이 결합한 시스템은 동북아시아 포곡식 산성 전통의 창의적 발전을 보여주는 탁월한 증거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전쟁을 대비한 군사유산인 동시에 도성의 위엄을 표상하는 도시유산이라는 점이 북한산성만의 차별화된 특징으로 꼽혔다. 이어지는 주제발표에서 신영문 서울특별시 세계유산등재팀장은 행궁 건립 과정에 담긴 파격적인 물력 조달의 실상을 공개했다. 당시 숙종은 국가 재정이 고갈된 상황에서도 안보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진휼청의 저치은 1만 냥을 행궁 조축 예산으로 전용했다. 이는 민생 복지보다 국가 존립을 우선시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또한 행궁의 목재를 구하기 위해 효종의 능침인 여주 영릉 인근의 황장목을 벌채하도록 명하는 등 유교적 금기를 깨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AD 행궁 건립의 이면에는 민초들의 처절한 희생이 있었다. 신 팀장은 팔도 사찰에서 차출된 승군 2100명이 해발 400미터 이상의 험준한 비탈길을 따라 거대한 목재와 석재를 운반하며 극한의 노동에 시달렸던 기록을 소개했다. 굶주림과 추락사 등 참혹한 고통이 이어졌던 당시의 상황을 짚으며, 안보 논리에 가려진 백성들의 희생까지도 함께 살펴야 행궁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건축적 측면에서의 성과도 논의됐다. 이승연 건축문헌고고스튜디오 실장은 북한산성 행궁이 지형과 기능적 요구에 맞춰 규모와 공간 구성을 합리적으로 조정한 조선 행궁제도의 완성형이라고 평가했다. 핵심 전각 중심의 간결하고 집약적인 구성은 유사시 국가보장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설계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이는 2011년부터 여섯 차례 진행된 정밀 발굴조사를 통해 고고학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박현욱 경기문화재단 경기역사문화유산원 책임연구원은 행궁의 수난사와 현대적 복원 방안을 다루었다. 19세기 말 행궁의 모습이 담긴 희귀 사진을 통해 국권 상실 후 행궁이 방치되었던 상황과 일제가 행궁을 영국성공회 피서지로 대여했던 사실이 공유됐다. 1915년 집중호우로 붕괴된 행궁은 현재 터만 남았으나, 고양시는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비가시적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문화유산의 가치에 걸맞은 다양한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사적 영역을 확대 관리해야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날 학술대회는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종합 토론과 시민들의 질의응답으로 이어졌다. 서봉수 백두문화연구원장, 조재모 경북대 교수, 한욱빈 한국건축안전센터 소장 등 전문가들은 4시간 동안 열띤 논의를 펼쳤다.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과 북한산성 서포터즈 회원들은 발표 내용에 귀를 기울이며 세계유산 등재를 향한 염원을 드러냈으며, 등재를 응원하는 박수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