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근, 진실화해위 '국가보안법 위반 고문.가혹행위 인권침해사건' 조사개시 통보 받아
"40년도 훨씬 이전에 당했던 고문 때문에 지금도 무릎이 아프다. 당시 저를 고문했던 공안경찰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재판을 받는 법정에 그들이 왔길래, 교도관들을 물리치고 포승줄에 묶인 채 기어가서 그들을 향해 말했다. 대대손손 자식들도 편하지 못할 거라고. 그 고문경찰이 지금도 살아 있다고 하니 무어라고 말하는지 알고 싶다."진홍근 이사는 하루 전날 진실화해위로부터 조사개시 결정 통지서를 받았다. 진실화해위는"신청해주신 진실규명 사건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의 형사소송법이 정하는 재심 사유의 개연성이 확인된다"라며"진실규명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조사개시결정되었다"라고 밝혔다.
경상국립대 동아리 '풀무회' 회원이었던 그는 '남도주체사상연구회'의 수괴로 지목되었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그는"당시 경찰·검찰은 녹두출판사에서 펴냈던 책 외 1점의 출판물을 소지하였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였다"라고 말했다. 진 이사는 거기서 온갖 고문을 받았다. 그는 경찰로부터 '각목 구타'를 물론 '잠 안재우기'에다 손과 발을 뒤로 묶어 작대기를 끼워 놓는 이른바 '비녀꽂이' 고문을 당했다고 했다. 그때 당했던 고문으로 인해 지금도 오른쪽 발목과 무릎이 좋지 않다.그는"경찰은 온갖 고문을 가하면서 제가 '남도주체사상연구회'의 수괴이고 사상교양의 내용과 조직체계의 전말에 대한 자백을 하라고 강요했다"라며"거의 보름에 걸친 고문수사가 견디기 힘들어 경찰서 건물 5층 옥상에서 뛰어내리기를 시도했으나 대공수사관에게 다리가 붙들리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술회했다.
그는"당시 저는 의대 재학생이었으므로, 그 이후 인생 전반에 걸친 피해는 실로 막심했다. 마땅히 국가는 저처럼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반헌법적인 정권 유지의 볼모로 잡힌 피해자들에게 진실화해위의 재조사와 재심, 그리고 그에 따른 국가배상으로 양심과 청춘을 돌려 줘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