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정치적 적수를 '적폐'로 부르고 청산을 주문하는 방식은 정치 세력들이 서로가 서로를 악마화하며 분노와 원한으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메커니즘 속에서, 정작 지금 이 순간 던져야 할 질문들을 망각하게 만든다. 적폐로 설정된...
잘 알려진 것처럼,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는 에서 정치적인 것의 고유한 분열 원리를 '적대'에서 찾았다. 슈미트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은 모든 정치에 고유한 원리이며, 정치의 본질은 갈등의 조정과 화해가 아니라 '적'을 규정해 그에 대항하는 '우리'를 구성하는 적대적 활동에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고로 그는 적대나 갈등이 존재하지 않고 마치 원자화된 개인만 존재하는 것처럼 간주하는 근대 사회와 바이마르 공화국의 의회 체제를 비웃었다.
슈미트의 이러한 관점은 주권국가 사이의 국제관계를 무대로 전개된 것이지만, '정당한 적'과 '전쟁 길들이기'라는 그의 개념은 현대 사회의 정치적 일상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많은 요소를 함축한다. 샹탈 무페가 '경합적 다원주의'1를 말할 때에도 이러한 '정당한 적'이라는 슈미트의 관점이 차용되어 있으며, 발리바르가 '반폭력의 정치'를 주장할 때 슈미트의 '전쟁 길들이기'를 반드시 인용하는 것 역시 적대의 실재성의 한가운데 폭력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현실적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지난 선거에서 반사이익을 통해 집권하게 된 현 정부 역시 또 다른 의미에서의 '적폐청산'을 수행하고 있다. 검찰 권력을 동원해 야당 수뇌부의 부패를 집중적으로 캐내면서 이를 우리에게 익숙한 '적폐청산'의 이미지로 덧칠하고 있다. 오늘날 시청과 광화문 일대에 나뉘어 서로 대립하는 수많은 시민은 상대방을 '적폐'라고 부르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야말로 그러한 적폐를 청산할 응징의 적임자로 간주하고 있다.
이처럼 적폐청산과 사법적 보복이라는 선과 악의 적대 논리를 벗어날 때 우리에게 비로소 보이는 쟁점들이 존재한다. 법인세와 종부세를 인하하여 부유층의 세금을 낮춰주고, 노동시간을 연장해 노동자들에게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정책을 어떻게 비판하고 막아낼 것인가? 이태원 참사에 보듯, 시민들을 처벌 대상으로만 볼 뿐 구해야 할 생명으로 보지 않는 행정 권력에 맞서 어떻게 생명에 대한 돌봄이 이뤄지는 공적 체계를 만들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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