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시사만화가 정운경 화백이 12일 세상을 떠났다. 반 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월간지 '여원'을 시작으로 대한일보(1963∼1967), 경향신문(1967∼1974), 중앙일보(1974∼2002) 등 여러 번 적을 옮겼지만 시사만화 '왈순아지매'는 늘 정 화백과 함께였다. 만화연구가인 장상용 초이락컨텐츠컴퍼니 웹툰사업팀장은 정 화백에 대해 '시사만화, 콩트부터 아동물까지 만화의 여러 장르를 섭렵한 대가였다'며 '특히 1950년대에 순종적이지도 여성스럽지도 않은 '경상도 아줌마'를 내세운 점이 획기적이었다'고 했다.
정운경 화백이 2002년 퇴임을 앞두고 부천역 앞 자유시장 입구에 있는 왈순아지매 동상앞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그의 역작인 '왈순아지매'는 이승만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 8개의 정부를 거치며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서민의 시각에서 담아냈다. 물가 인상으로 삶이 팍팍해지자 집에서 이발하는 서민들,"기왕이면 저 집 음식 팔아 주자"며 '광주식당'으로 들어가는 넥타이 부대, '물태우' 생수를 마시며"물맛이 미적지근하다"고 말하는 직장인들, 30~40대 고급 인력이 줄지어 이민을 떠날 때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80대 정치인들까지 소시민들의 일상적인 상황을 비틀어 권력과 정치를 비판했다. 1960년대 '왈순아지매'는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경북 안동 출신인 정 화백은 유년기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부산 국제신보에 만화를 실었고, 동국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후에도 용돈을 벌기 위해 만화를 그렸다. 1951년 ‘코주부’ 김용환 화백의 문하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정 화백과 막역한 직장 선·후배 사이였던 김재봉 전 중앙일보 기자는"호탕하고 재밌는 성격의 선배였다. 젊은 기자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특히 사회부 기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고 그를 기억했다. 그에 따르면 정 화백은"소재가 궁하면 편집국에 와서 기자들에게 술을 마시자고 청했고, 생활 밀착형 만화를 그리기 위해 늘 취재 기자를 취재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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