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4월을 맞은 필자가 수필동호회 문우들과 대구 정호승 문학관을 찾았다. 2023년 개관한 문학관은 범어천변 빨간 건물로, 1층 북카페 '낙타'와 2층 전시실로 구성됐다. 경남 하동 출생 정호승 시인은 7살부터 12년간 대구 범어동에서 살며 시인의 꿈을 키웠다. 전시실에는 시인의 원고, 편지, 작...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기저기 봄꽃 소식이 한창이다. 기온은 빠르게 올라가고 날씨도 화창하지만 내 몸과 마음은 아직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혹시 내가 느려진 걸까 하는 우려가 생겼고 3월 내내 봄 기차에 무임 승차한 듯 마음이 불편했다.
이러다가 봄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여름이 올 것 같았다.정호승 문학관은 대구 수성구 들안로 403-1번지에 있다. 동대구역에서 대중교통으로 20여 분이면 도착한다. 범어3동 행정복지센터였던 이곳은 2023년 3월 31일 문학관으로 개관했다. 범어천변 번화한 골목 사이로 들어가면 눈길을 사로잡는 빨간색 건물이 보인다. 생기가 넘치는 빛이 우주의 행성처럼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겼다. AD 건물 안 1층은 북카페로 이름은 'NAKTA'다. 출입구 맞은편에 정시인의 책이 진열돼 있고 정면에는 다른 작가들의 책이 꽂혀있다. 사막을 걷는 낙타의 이미지가 시인의 고독한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커피를 내릴 때도 모래를 이용한다. 사막을 연상하게 하는 고운 모래가 카페에 있으니 이색적이고 운치 있었다. 전시실은 2층에 있다. 계단 벽면에는"사람은 누구나 시인이다. 그 시를 내가 대신해서 쓸 뿐이다"라는 정호승 시인의 말이 적혀 있다. 누구나 시인처럼 아름다운 말을 가슴에 품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속에 있는 시어를 찾아 한 계단씩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정 시인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는데 7살 때 수성구 범어동으로 이사 와서 12년 동안 범어천 인근에서 살았다. 삼덕초, 계성중, 대륜고를 다니며 시인의 꿈을 키웠고 학창 시절에도 문예 창작에 있어서 두각을 나타냈다. 계성중은 김동리 소설가와 박목월 시인이 졸업한 곳으로 선생님들도 문학 지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문학관 2층에서 창밖으로 시인이 살았던 집터가 보였다. 은행원이셨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중학교 3학년 때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하지만 정시인은 '고교문예의 성찰'이라는 평론으로 1968년 문예장학생으로 경희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 썼던 원고도 잘 보관되어 있고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도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리움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시인도 일상의 언어로 소통하지 특별히 진중하고 문학적인 어투로 안부를 묻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다. 전시관 중앙에 정 시인의 원고가 있었다. 작은 종이에 적힌 시부터 두꺼운 노트에 적힌 시까지 여러 번 수정하고 퇴고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경희대학교 스승인 김우종 교수가 그린 수선화 그림도 볼 수 있었다. 는 수선화가 핀 산기슭을 혼자 걸어가는 한 인간의 외로운 모습을 표현한 시다. 워낙에 유명해서 수선화가 피는 4~5월이면 읊조리게 된다. 특히 마지막에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는 대목이 긴 여운을 남긴다. 정 시인은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교류가 많았다. 박항률 화가는 정호승 시인과 한 몸인 것처럼 시와 그림이 하나로 잘 어울렸다. '새와 여인' 그림은 오래전 그림을 최근에 다시 그렸는데 연약해 보였던 여인이 등을 꼿꼿하게 펴고 시선도 앞을 향하고 있었다. 최근의 여성들이 슬프고 연약한 모습이 아닌 사회의 다양한 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정 시인의 라는 시는 이집트 사막을 여행하던 중 모래로 그린 그림을 발견하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시인의 방을 옮겨 놓은 자리에 정호승 시인이 사막을 여행하면서 모은 여러 개의 낙타 인형이 진열되어 있었다. 인생은 사막을 걷는 것과 같다고 생각이 들었고 낙타의 모습이 우리 인간의 모습 같았다.전시실에 실제 시인이 쓰던 책상이 있었는데 중학교 교실에서 쓰는 1인용 책상 크기였다. 그는 이 작은 책상에서 찻잔을 옆에 두고 많은 시를 남겼다. 지금까지 1100여 편의 시를 썼다고 한다. 정시인은 고등학교 때 우연히 부엌에서 어머니의 시작 노트를 발견했다. 나중에 어머니는"사는 게 슬펐지만 그 달을 보고 시를 쓰면서 견딜 수 있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시도 삶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쓴 것이라고 말했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힘을 주다 보면 삶은 더 많은 것을 내어 주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한 날 유독 마음에 닿았던 시는 다. 그는 군 생활 중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서 1973년 대한일보에 , 1972년 한국일보에 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경주는 정호승 시인의 외가가 있는 곳으로 자주 가던 곳이다. 첨성대는 어린 시인에게 놀이터가 되었던 곳으로 첨성대의 굴곡이 외할머니의 치마폭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대구에 올 때 경주로 가서 첨성대도 보면 좋을 것 같다. 정 시인의 시에 음을 붙여 음반으로 만든 곡이 80여 편이다. 문학관에서 이어폰으로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고 김광석 가수가 부른 를 들으며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대구 대봉동이 김광석 가수의 고향이라고 한다.1층으로 내려오니 엽서에 짧은 시를 적으면 선별해서 시인의 책을 보내준다고 하여 일행과 함께 시를 적었다. 힘든 훈련 속에서도 시를 써서 신춘문예에 두 번이나 당선된 시인의 기를 받아서일까 다들 생각지도 못하게 한 편의 시를 완성해서 벽에 걸었다. 마음속에 시심을 가득 채우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올봄에는 대구 정호승 문학관에서 마음의 꽃을 피워보면 어떨까, 인근 근대화골목에 있는 청라언덕에서 봄마실도 곁들여서 말이다. 정호승 문학관 운영시간은 화~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토~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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