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이 박정훈에게] 한국군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이재명 정부의 '전향적 조치' 필요한 때
'경기도 다낭시'.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다낭에 워낙 많이 여행을 가서 붙여진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사실 여행을 가기 전까지 큰 기대를 하진 않았습니다. 너무 '한국화된' 여행지가 아닐까 싶어서요. 그런데 실제로 지난주에 갔던 다낭과 그 옆 도시 호이안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국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건기라서 비 하나 내리지 않았지만 덕분에 햇살 가득한 해변을 가득 눈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호이안 중심가에서 벗어난 숙소에선 호수와 우거진 숲 사이에서 열대성 기후의 화려한 모습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다낭은 대형 건물이 있고 인프라가 갖춰진 대도시이면서도, 조금만 이동하면 휴양지라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두 가지 이점을 갖고 있는 이런 도시가 흔치는 않으니까요. 왜 사람들이 다낭에 많이 가는지 알겠더군요.정훈님, 저는 그렇게 만족스럽게 여행을 마친 후, 집에 와서 다낭이 어떤 도시인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전에서 다낭이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다는 사실, 미군이 처음 베트남에 상륙할 때 백사장이 끝도 없이 길게 펼쳐져 있는 것으로 이름난 미케비치로 왔다는 사실까지도요. 미군은 이 근처에 공군기지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군은 다낭 인근에서 참혹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더군요. 제가 갔던 숙소 중 하나는 '신라 모노그램 꽝남 다낭'인데요. 한국의 '호텔신라'가 지은 호텔입니다. 중간에 붙은 '꽝남'은 이곳이 주소상 다낭시가 아닌 꽝남성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라 모노그램에서 차를 타고 10분, 5.5km만 가면 꽝남성 하미마을이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하미마을에서 내륙 쪽으로 10km쯤 더 들어가면 퐁니·퐁넛 마을이 나옵니다. 다낭 시내에서도 차를 타고 20~30분이면 갈 수 있는 두 마을에는 '위령비'가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중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희생 당한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한국군 청룡부대가 1968년 2월 12일 퐁니·퐁넛 마을에서 민간인 74명을 죽였고, 그달 24일엔 하미 마을에서 민간인 135명을 학살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80여 건, 희생자는 9000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거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퐁니·퐁넛마을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소송에서 1심과 2심 법원은 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또한 2022년 하미마을 학살 사건 피해자들은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진실화해위는 이를 조사하지 않기로 하며 '각하' 결정했습니다.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가 4.3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을, 5.18을 기억하듯 베트남인에게는 절대로 잊히지 않는 역사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별다른 의식 없이 여행지의 멋진 풍경을 마냥 누리기만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해돋이가 환상적이었던 제주 표선에 있는 해비치 호텔이, 한강 작가의 소설 에서 학살터로 등장하는 '표선 백사장 일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비극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학살에 의해 죽어간 희생자들을 지우지 않고 떠올리는 것은, 그 땅을 밟고 있는 자들의 책무이니까요. 그러나 한국 정부는, 또 한국인들은 희생자들을 애써 지우고자 합니다. 2000년 설치된 하미마을 위령비의 비문은 연꽃 문양이 그려진 대리석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원래의 비문엔 한국군이 마을 주민을 학살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는데, 위령비 건립 비용을 지원한 한국의 참전단체가 비문 내용을 문제 삼자 이 내용을 덮어버린 것입니다.한국군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진실 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달 18일부터 23일까지 이름이 같은 두 명의 응우옌티탄씨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퐁니·퐁넛 학살로 어머니와 남동생을 잃고, 자신도 복부에 총을 맞은 응우옌티탄, 하미 학살로 가족 5명을 잃고, 왼쪽 귀의 청력을 잃은 또 다른 응우옌티탄입니다. 이들의 방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대통령실 면담을 했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의 법률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의 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최선의 예의'를 보여줬다고 합니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했지만"여러분들의 한이 해소될 방법이 있을지 찾아보겠다"는 이야기까지 했고, 면담 직후 퐁니 응우옌티탄씨가"기쁘고 행복합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국가가 학살의 진실을 규명하고 반성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또다시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폭력의 역사는 쉽게 반복됩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이들이 5.18 당시 계엄군에 일부 포함됐고, 이들의 경험이 당시 시민들에 대한 학살에 반영됐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이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역사와 동떨어지지 않은 이유입니다. 12.3 비상계엄은 자신의 권력이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민에게 총을 겨눠도 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세력과 군이 합작한 위헌·위법 행위였습니다. 그들이 여전히 떵떵거릴 수 있는 것은 '폭력의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진실된 사과와 위로는 더더욱 중요합니다. 전쟁범죄와 국가폭력에 대한 한국 정부의 명확한 입장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어떠한 이념이나 이익도 '한 사람의 생명'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정의'를 우리 스스로 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니까요.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2023년 2월"법원이 베트남전에 파병된 우리 군대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첫 판결을 냈다. 법원의 판결을 지지한다"라며 퐁니 응우옌티탄씨의 1심 판결 결과를 환영했습니다. 이어"대한민국은 일본이 걷고 있는 잘못된 길을 가서는 안 된다"라며"정부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전향적 태도를 취할 것을 당부드린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21대 국회에서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베트남전 진실규명법안에 발의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재명 정부'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 모두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및 민간인 학살에 사과의 뜻을 밝혔으나, 구체적이지 않고 우회적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그보다는 진일보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 또한 국가배상소송 1심, 2심 결과에 대해서 환영했습니다. 동시에 한국 정부의 항소 및 상고에는"베트남은 과거를 닫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을 옹호하지만 그것이 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한국 정부가 전쟁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해 주길 요청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베트남 정부는 응우옌티탄씨의 국가배상소송 이후에는 과거와는 달리 민간인 학살 문제에 있어서 적극적인 입장을 내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달 13일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주석이 이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요청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르엉 주석을 만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국가배상소송의 상고 취하와 더불어 진상조사를 위한 공식기구 설립입니다. 이는 바로 베트남전 학살 생존자들과 함께하는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정훈님, 저는 이 대통령이 하미마을 위령비를 직접 찾아서 비문을 덮고 있는 연꽃 문양의 대리석을 치우고,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대통령의 사과는, 베트남 인들은 물론 한국의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도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렇게 부를만한 자격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관광지로서의 겉모습만 봤을 뿐, 그곳에 사는 베트남인들의 깊은 상처를 이해하거나 위무하지 못했으니까요.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50년, 늦었지만 한국이 '가해에 대한 인정과 사과도 않는 부끄러운 나라'에서 벗어나야만 할 때입니다. 부디 이재명 정부는 다르기를, '인권'과 '평화'라는 가치를 양손에 들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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